"그건 문제가 아니야. 나도 그게 소문일 뿐인건 알아."
"...그럼 뭐가 문제인데."
"말하기 싫어."
"말을 안 해주면 뭐가 문제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황소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방금 전까지 싸고 있던 짐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영민한, 능력있는, 존경받는 마녀라는 이름도 막상 싸울 때는 별 의미가 없어서 그냥 떼쓰는 보통의 여자같이 굴게 돼버린다. 이런 식으로 말을 끊는 것이 좋은 식으로 해석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여기서 참고 달래듯이 말을 하는 것이 어른스럽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왈칵 화를 내는 것이다. 나중에 후회할 말을 내뱉지 않기 위해서 억지로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이 그나마 어릴적보다는 나은 일일까. 냉랭한 침묵이 잠시간 둘 사이를 스쳤다.
대화가 억지로 끊어지는 덕에 튀어나오려던 말은 삼켜졌지만 오히려 화가 치밀었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결국은 그녀를 이길 말을 도무지 준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모진 말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무엇 하나도 그녀처럼 지능적이고 잔인하게 상대방의 마음을 헤집을 수는 없었다. 결국 가장 치명적인 한마디를 고르지 못한 소년은 한참 씨근대는 숨을 고르다가 소리쳤다.
"뭐가 내 잘못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진짜 이것만은 못 참겠다. 잘잘못 가리자고 하자면 그것부터 좀 어떻게 해봐. 솔직히, 진짜 솔직히 얘기하자면, 너 화낼 때 콧구멍 벌름거리는거 진짜 심한 거 알아? 제발 코 좀 가리고 말해주면 안되냐?"
"뭐?"
황소는 기가 막혔다. 얼떨결에 코 부분을 손으로 엉성하게 가리고 잠시 생각하니 새로운 분노가 치밀었다.
"뭐야, 지금이 그런 말을 할 때야? 너, 괜히 내가 화내니까 성질내는거지? 너 아직 내가 뭣 때문에 화를 내는지도 모르잖아. 그러면서 자꾸 쓸데없는 거 끌어다 붙이지 말아줬으면 해. 좀 우리 대화에 집중하자."
"말도 안 해주는데 니가 어떻게 화났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아, 진짜 코 가려도 보인다고, 좀 자알 좀 가리라고, 잘."
"아 진짜, 왜 이렇게 유치하게 굴어!"
"아, 네, 유치해서 아주 죄송합니다. 이게 내가 잘못한거야? 아아, 그래그래. 유치해서 진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아, 황소 선생님."
마지막 말을 입까지 삐죽이면서 말하는 것을 보면서 황소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어쩜 저렇게 사람 화를 돋구는데 천부적일까. 정말 입을 찰싹찰싹 때려줬으면 좋겠다. 아주 찰싹찰싹 입술이 부르틀 때까지. 얄밉게 구는 태도에 더불어 내심 신경쓰던 부분을 지적받은 것에 상처받은 부질없는 자존심이 이성의 저편에 차갑게 잠들어있던 분노에 불을 지폈다. 황소는 야무지게 입술을 깨물었다가 내뱉듯이 말했다.
"하, 그따위로 말하자면 말이지, 너도 발냄새 진짜 심하거든? 발은 좀 방 밖으로 내보내고 얘기하자. 아, 진짜 공기 탁해지는거 완전 달갑잖거든?"
"뭐?"
황소가 이런식으로 반격하리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소년은 엉겁결에 발을 들어서 냄새를 맡을 뻔했다. 발을 올리다 마는 엉거주춤한 자세를 당황과 함께 수습하면서 새삼스런 분노가 타올랐다.
"너... 진짜..."
"너 진짜 뭐? 내가 진작에 좀 그쪽 관리 하라고 몇 번 얘기 했잖아. 평소 생활습관만 약간 고치는 걸로도 꽤 많이 좋아질거라고 그랬지? 어머, 진짜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지금 와서 이렇게 남의 방에서 공기나 오염시키고 막 그래."
"솔직히 니가 그런 말 언제 했어!"
"했어. 그것도 아주 많이."
"나 들은적 없거든요?"
"어머나, 귓구멍도 막히셨나봐. 그러게 내가 평소 위생관리 좀 잘 하시라고 그랬잖아요?"
새치름하게 고개를 돌리는 그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소년은 어금니를 부드득 갈았다. 정말이지, 한마디도 안 지려고 한다니까. 금방 저렇게 대꾸하는 것 보라지. 게다가 그것도 맨날 자기한테도 얘기해서 도와달라고 할 때마다 귀찮다고 안 해주던 신체적 약점을 꼬집어가면서. 꼭 자기한테 약한 부분을 보이면 그것 보라고 얘기하면서 잘난 척하더라. 새삼스럽게 황소와의 대화에서 일방적으로 초라해지기만 했던 자신의 비굴한 처지에 더불어 평소 병적으로 신경쓰던 부분을 지적당한 슬픔이 그를 한없이 비참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슬픔을 눈꼬리에 반짝반짝 매달고 소년은 절규했다.
"그래, 니가 자꾸 코를 벌름거리니까 냄새가 유난히 잘 나기는 하겠지. 그래서 그런거지 난 아까 발 씻었어. 씻은지 얼마 안 됐다고. 난 아무리 생각해도 니 코가 좀 이상한 것 같아. 그렇게 유난스럽게 벌름거릴 때부터 난 니 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지금 얘기하는거 보니까 냄새도 막 지어내나보다. 너야말로 어떻게 치료를 좀 받아봐라. 마법사가 제 신발끈 못 묶는다고, 그거 괜히 나온 말이 아니거든!"
"어디서 마법사 타령이야, 마법사 타령이! 이게 지금 마법사가 나올 문제야? 아침저녁으로 제대로 뽀독뽀독 씻기만 해도 되는 문제를 괜히 신체적 이상으로 부각시켜가지고는 눈코 뜰새없이 바쁜 사람 오라가라 하질 않나, 지금은 그게 자기 문제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남 탓이야. 아니 그럼 니 발냄새에 괴로워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다 코를 벌름거리니? 너만 빼고 다 코가 병신이야? 핑계를 대려면 좀 제대로 대던가. 그게 말이 되니? 진짜 정말이지 유치 쌈싸먹겠어."
"....진짜 말 말자. 너랑은 정말이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남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라야 말을 하지!"
"그건 내가 할 말이지! 넌 정말이지 너밖에 모른다니까. 대화가 안 돼, 대화가."
"정말 그만해, 이 코쟁이야!"
"너야말로 좀 그만 하시지, 이 발냄새 대마왕아!"
이후 수많은 시간동안 서로의 신체적 약점을 공격하는 비정한 대화가 시끄럽게 오갔다. 앞뒤가 전혀 연결되지 않는 대화의 끝은 항상 발냄새와 코를 언급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고 점차 대화의 전후가 생략되어 코와 발냄새에 대한 단어만이 남아서 언쟁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더 이상 언쟁이라고 말하기 무안한 지경이 되어가자 황소는 마침내 크게 화를 냈다.
"너, 너, 진짜 너랑은 나 얘기 안 할꺼야. 너랑은 진짜 끝이야!"
결국 황소가 반지를 뽑아서 탁자에 내려놓고 씩씩거리며 방을 뛰쳐나가면서 싸움은 극적으로 파탄이 났는데, 반쯤은 울먹이면서 복도를 달리는 황소는 물론이거니와 소년에게도 기쁨보다는 발냄새에 대한 미묘하고 은근한 거슬림과 짜증스런 우울만이 남았다. 겨우 코 얘기 몇마디 했다고 이별 선언이라니, 쟤가 갑자기 왜 저러는거야? 솔직히 이 언쟁으로 더 상처받은 것은 나라고, 소년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혼란속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한편, 울적하게 뛰어나온 황소는 자기 방에서 자기 발로 걸어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을 불러서 쫓아내라고 할 걸. 짐을 가지러 다시 들어가야 하잖아. 어쩜 이렇게 바보같이 굴었을까. 잠깐, 바보는 내가 아니라구, 아니, 솔직히 왜 저렇게 유치한거야. 진짜 몇 년을 지나도 바뀌지를 않는다니까. 아우, 진짜 매일같이 왜 저런다니. 분을 못 이겨서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문질러 닦으면서, 황소는 그렇게 생각했다. 분이 도통 가라앉지를 않아서 다행히 옷은 모두 갖춰입었으니 사람을 불러서 짐을 가져다 달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끌어낼 때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쨌거나 자신은 떠날 것이다,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지, 그러면 막 후회하고 그러라지. 황소는 눈을 부릅뜨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래서 분량이 좀 적습니다.(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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