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는 흩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다소 될 대로 되라 식으로 질러버린 여행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꼬일 거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자꾸만 확인하게 되어버린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그 자신의 생각대로 풀리는 일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작게 말하면 학점에서부터. 수업 한번을 제대로 들어본 일이 없으면서도 요행으로 학점이 좋게 나오기를 바라지만 학점은 냉정했다. 아마, 취직같은 인생이 걸린 문제에서도 요행을 바라며 그저 멍하니 이력서 끄트머리를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무언가, 인생에 제대로 부딪쳐보기 위해서 있는 돈 없는 돈을 긁어모아 비행기표를 끊었지만 또 이렇게 문제를 마주하고는 멍하니 주저앉아 버렸다.
어차피 이 정도 밖에 안되는 인간이고, 인생일지도.
몇 달간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도 말 한번 붙여보지 못했던 그녀도 저기에 저렇게 앉아있다. 그리고 내 앞에는 그녀의 연인이었던 남자의 퉁퉁 불어버린 시체가 그녀가 팽개친 모양 그대로 굳어있다. 그 시체를 어찌할 수 없어서 그냥 방치해 두고 우리는 한참 머쓱한 기분에 잠겼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그녀였고, 그래서 우리는 열흘 전에, 안개가 걷힐 때 까지 기다렸다가 그의 시체를 파묻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이런 짙은 안개 속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공기는 축축해서 불을 붙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은 불을 붙이는 것을 포기했다. 다행히도 비행기 추락의 그 날 쏟아진 비로 당분간 식수 걱정은 없을 것 같다. 먹을 것을 찾아보는 것은 일찍 포기해버렸다. 말했듯이, 안개는 짙어서 내 손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 먹을 것을 찾아본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본다는 것도 물론 불가능했다. 나는, 우리는, 철저히 무기력했다.
잠으로 굶주림을 애써 잠재워보지만 어느 순간 잠들면 다시 눈뜰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에 애써 잠을 깨우곤 했다. 눈앞이 캄캄할 지경이었다. 먹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걸까. 아니, 있다.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고는 있지만 부분부분 살펴보면 제법 먹을 만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한번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온 생각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나는 정말이지, 배가 고팠다. 살고자 하는 욕망같은 거창한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정말, 배가 고팠다. 무엇이라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무엇이라도 입에 쑤셔 넣을 수 있을 만큼.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을 억누를만큼.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농담을 건네던 친구라 해도.
아직은 혐오감이 굶주림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일은 다르리라. 혐오와 굶주림이 뒤얽힌 막막한 심정을 잠으로 달래보기로 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내 친구의 시체는 여기저기 헤집어져 있었다. 나는 아니다. 이렇게 여전히 배가 고픈데. 이 한정된 공간에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극한 상황에서 나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내가 먹을 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먹을 만한 부분은 제대로 골라서 뜯어먹었구나 싶다. 나는, 정말로, 배가 고팠다.
다음 순간에는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나는 먹어야 했다. 그 외의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이제 무얼 망설이겠는가. 애초에 망설였던 것이 잘못이었다. 킥킥하는 기묘한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사지를 경련하는 시체의 살갗을, 아마도 그녀가 그의 시체를 찢을 때 사용했을 작은 나이프로 푹푹 찔러가며, 나는 먹었다. 아아, 그래.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모양이지. 삶이란 것은.
그녀의 시체가 슬슬 뼈를 보일 즈음. 안개가 걷혔다. 이제 어떤가. 더 이상 무엇을 하겠는가. 안개가 걷혔지만, 내가 이 알 수 없는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배가 부른데.
“이 녀석이 다 먹어버린 모양이지.”
동료 경관의 욱욱거림을 등지고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세 구의 시체는 성한 데가 없었다. 연기가 안개처럼 흩어졌다.
“미친놈 아닐까. 십분만 걸어서 나가면 마을이 있는데. 이런 데에 비행기 사고 피해자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 못했던 우리도 우리지만. 자, 철수하자구. 오늘 점심은 뭐더라?”
나는 물론 그와 별로 친한 편이 아니었지만,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그의 영향력은 지나치게 컸다.
사실 완전히 호감이 없었다고도 말할 수는 없다.
그냥 그런 밍밍한 관계.
하지만 고3때 나와 그는 어머니의 주선으로 친해질 수 밖에 없었고
나름 꽤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과 자체가 그와 별로 관계가 없고, 졸업하고도 딱히 친할 필요가 없어서.
수많은 시험장에서 나는 그의 얼굴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의 이름은 '영어'군이며 나는 또다시 그와 타협해야 함을 느낀다 -_-
대학교 1학년때 소설 쓰기 숙제를 무척 싫어했던 나의 친구와
영어 자기소개 레폿을 너무나 쓰기 싫어했던 나는 협정을 맺고
서로의 숙제를 대신해주기로 했었는데 이 짧은 소설이 그 결과물이다.
'시체, 남녀 한 쌍, 고립'이라는 소재로 단편 소설을 쓰는 숙제였던 걸로 기억한다.
쓰면서 이것저것 더 덧붙여야지 생각했지만
지금은 새삼 뭘 더 보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것은
내가 그때와 마음가짐 자체가 상당히 판이해져서
주섬주섬 덧붙이는 것이 전혀 다른 소설을 쓰는 것보다 힘들기 때문.
그때 그, 실존을 위해서는 뭐든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던 굶주림은 이젠 없지만
아직도 가끔은 헛헛함을 느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이 '구조'의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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