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 5


음식과 물은 누가 봐도 명백하게 줄어가고 있었다. 식사는 하루 두 끼에서 한 끼로 줄었다. 이제 아무도 구조대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할수록 희망은 무서운 속도로 부풀었다. 혹은 어쩌면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모두들 각종 수식어를 붙여 머릿속으로 각종 가설을 꾸며가면서 구조의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만한 최소한의 음식덕분에 사람들은 쉽게 허기졌고 그만큼 정신은 예민해졌다. 하루하루는 모든 나쁜 가능성에 대한 상상들과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불가능한 일들에 대한 망상으로 채워졌다.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자리에 누워있는 것으로 그악스런 허기를 면하고 말을 줄여서 기운을 아꼈다.

작은 안식처는 침묵에 잠겼다. 그것은 처음의 침묵과는 질감이 다른 침묵이었다. 감당못할 감정에 허덕이며 자신을 안정시키는 데에 온 체력을 소모하던 그 무거운 침묵과는 다른 것이었다. 침묵은 얇고 파삭 깨어질 것 같은 긴장감을 안고 있었다. 누군가가 무엇을 말해도 쉽게 싸움이 날 것 같은 예민한 공기가 나날이 서로를 아프게 자극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식량은 점차 줄어들었고 이제 손으로 헤아릴 수 있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먹을 수 있는 식량의 양을 늘릴 수 없다면, 먹는 사람을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안식처가 있는 듯한 고산지대에 폭우가 내리는 밤이었다. 천둥소리는 고막이 아니라 온 몸을 진동시켰다. 벼락이 칠 때마다 드러나는 얼굴들이 유난히 선명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손에 쥐고 있는 예의 그 형광색 겉옷은 그 벼락 속에서도 눈에 아로새겨지듯 선명했다. 비명과, 살해자의 의지를 담은 고함과, 천둥소리와 그 모든 것들이 얼룩지듯 뒤섞였다. 자기 손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어둠과 망막을 태울 듯 작열하는 빛이 수없이 교차하는 동안 그 모든 일들은 꿈 속 에서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다. 결국 살해하고자 했던 사람은 남은 두 사람의 필사적인 저항에 의하여 문 밖으로 밀려나갔다. 음식도 물도 없는, 시체들로 가득한 저 밖으로.

"살려줘… 안으로 들여보내줘… 여기는 싫어… 시체가 있어… 안으로 들여보내줘…."

처음에는 분노와 노여움으로 문을 두들기던 남자의 목소리는 점차 애원으로 바뀌었다.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려줘… 살게 해줘…."

나직한 흐득임이 빗소리를 뚫고 들어왔다. 남은 사람들은 그 모든 애원을 차게 외면했다.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음식을 늘릴 수 없다면 사람을 줄이는 것이 옳다. 언제 그들을 죽일 지 모르는 사람을 안에 들일 수는 없었다. 없는 체력에 격하게 움직이고 오래 흐느꼈던 때문일까. 흐득이는 소리마저도 점차 줄어들어 무엇도 들리지 않는 공황처럼 찾아온 고요의 끝에서 까드득하고 무언가 뾰족한 것으로 문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찌이익, 찌이익, 찌이익. 다섯 개쯤 되는 얇고 뾰족한 것으로 고요를 찢는 소리.

마치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쓰다듬는 것처럼 소리와 함께 소름이 솟아올랐다. 소리는 찌이익, 찌지익, 찌이익, 하고 발작적으로 양 손으로 철문을 긁는 소리가 반복되었다. 저 밖에 썩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소리는 말하고 있었다. 저 밖에 죽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고 소리는 절규하고 있었다. 살아있다고, 살고싶다고, 살려달라고.

문득 무언가가 탁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찌이익, 찌이익, 찌이익, 탁.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을 긁는 소리는 계속 되었다. 누군가가 지르다가 질식해버린 비명처럼 꽉 막힌 방 안에 울리는 신경을 긁는 소리였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러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오랜 시간동안 문을 긁는 소리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소리마저도 스치는 바람소리마저도 희미해졌고 마침내 그쳤다. 그 동안 사람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소리가 그치자 그제야 사람들은 물을 마셨고, 밥을 먹었다. 이전에 세 명 분으로 꺼내지던 음식이 두 명 분으로 줄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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