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 4


사람들은 가능한 한 서로에게 상냥하려고 했다. 그것은 묵묵한 배려나 수줍은 친절의 형태로 표현되었다. 물을 건네준다던가, 젓가락을 가지런하게 쪼개준다던가 하는 모양의 상냥함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유일하게 가족이었던 중년의 부인은 그녀의 남편에게 유난히 불친절했다. 초반부터 여행의 원인을 남편에게 돌리던 그녀는, 남아있을 자식들에 대한 걱정을 입에 올리다가도 자식의 불운을 빌미로 그를 힐난했다. 아마도 그들은 비행기를 타기 전에도 그러했으리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습관과도 같았을 그 비난이 치명적이었던 것은 그가 죽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곧 죽을 운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이 쓸모없는 것, 차라리 뒈져버려!"

욕설을 비명처럼 외치는 부인의 목을 가차없이 눌러 조르는 그를 아무도 말리지 않았던 것은 어떤 상냥함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그를 동정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물을 건네준다던가, 젓가락을 가지런하게 쪼개준다던가 하는 모양의 상냥함이었다. 그에게 예의 그 형광색 나이롱 겉옷을 건네준 것도 그런 친절함이었다. 형광색 겉옷에 의해 잘록하게 목이 졸린 채로 마지막 힘을 다하여 부인이 휘두른 포크가 남편의 숨골에 박힌 것은 의도인지 우연인지 확인하기 힘들었지만 평생의 과업을 이루었을 남자의 마지막 표정은 유난히 평온했다. 그들은 상냥하게 그의 부인과 그를 멀리 떨어지게 내어보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세 명분의 음식을 꺼내어 물을 마셨고, 밥을 먹었다

무료와 공포에 지쳐서, 사람들은 조금씩 발랄해졌다. 그들은 멀리 떨어진 가족들을 잠시 이야기하고, 혹은 구조대가 곧 올 것이라는 화제를 입에 올리기도 했다. 문득 웃기도 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잘못 알아듣고 영 엉뚱한 소리를 했을 때였다. 웃음은 금방 멈췄지만 웃음의 여운은 오래 남았다. 새장같이 좁은 안식처 속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데도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놀라게 했다. 앞으로에 대한 기대 때문도 아니고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실에도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었다. 어쩌면 이 안에서도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고 누군가는 잠시잠깐 생각했다. 만약 살아만 있다면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누군가는 생각했다.

말은 부지불식간에 입에서 튀어나왔다. 너무 오랫동안 생각해서 입 밖으로 튀어나간 후에도 그것이 생각일 뿐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오랫동안 입안을 맴돌았던 말이었다.

"어차피 나가지 못하더라도 같은 거겠지."

생각은 말로 토막쳐져 내던져졌다.

"응, 여기가 집이라고 해도, 다를 건 없지."

안온한 머릿속에서 내팽개쳐진 생각이 파닥파닥하고 몸부림을 친다.

"결국은 죽는 게 아니면 사는 것뿐이지. 어디든, 어디에 있든."

토막난 생각이 마지막으로 파드득하며 경련하는 것처럼 말이 맺어진다. 죽은 생각, 죽은 말. 누구에게도 아무 의미를 맺지 못하는 심상들이 파르르 떨리는 공기 속에서 숨을 멎는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말은 스쳐지나가고 그 잔상만이 뇌리에 남아서 부질없이 그림자를 떨군다.

누군가가 죽은 말을 주워서 그에게 되돌려주었다. 그 말이 가지는 섬뜩한 질감이, 그를 퍼뜩 깨어나게 했다.

"나가지 못하더라도 같은거에요."

귓가에 서늘한 입김을 불어넣듯이.

"여기가 집이라고 해도, 다를 것도 없지요."

목 뒤에 서늘한 손을 올리듯이.

"어디에 있어도 결국은 사는 게 아니면 죽는 것 뿐이에요."

부지불식간에 지나쳐가 소름을 끼치게 하는, 무언가 모르는 희미한 그림자처럼.

"하지만 이 안에만 있다면 죽는 것 뿐이겠지요."

살아만 있으면, 행복할 수도 있다고, 죽은 말들이 돌아와 접어둔 생각을 일깨운다. 살아만 있으면, 행복할 수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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