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 3
처음에는 살아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안도하고 혹은 슬퍼하고 절망하는 일들에 온전히 하루를 소모하느라 바빴던 사람들도 감정의 격렬함이 잦아들자 차차 현실적인 초조함을 느꼈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정말 알고 있을까? 비행기가 떨어진 지점을 정확히 찾지 못하는 게 아닐까? 왜 도대체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구조대는 오지 않는 것일까? 사실 조금만 더 찾아보면 근처에 민가나 혹은 마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과 의혹들은 마치 불씨처럼 밟아서 끄려 하면 할수록 번져나갔다. 누구도 입을 열어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의 의문은 끝내 그들을 떠나지 않았다. 저 밖에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도무지 저 두꺼운 철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 안에는 물과 음식이 있다는 것, 함께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밖에는 시체들이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제 시체는 그들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주는 죄책감보다는 썩어가기 시작했을 그 흉물스런 모양새로 공포가 되었다. 누군가가 공기를 바꾸자며 문을 열었을 때 순식간에 밀려들어온 그 시체냄새를 잊고 밥을 먹을 때 까지는 며칠이나 되는 시간이 걸렸다. 먹는 음식에서마저도 시체냄새가 나는 듯 했다. 결국 배고픔을 이기지 못할 때 까지 그들은 말도 하지 않았고, 음식도 먹지 못했다. 시체들 사이를 가로질러서 더 멀리까지 나가야한다는 것, 그것이 그들이 문을 열고 나가지 못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었다.
살아있는 사람들로 인해 공기가 눅진하게 달아오르면 그것은 또한 시체냄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밤중에 소스라치는 공포에 눈을 뜨면 이불 대신으로 덮었던 옷가지에서 느껴지는 자신의 것이 아닌 사람의 냄새는 뱃속 저 깊은 곳으로부터 비명을 끌어내었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지 않아 윤곽으로만 느껴지는 타인의 몸뚱이들은 시체 같아서 두렵다. 죽음에서 조금도 나을 것이 없는 생, 혹은 죽음을 예비하기 위해 남겨진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산 시체의 냄새로 가득한 공간에서 묵묵히 견디어나간다.
그들 중 유난히 심하게 다쳤던 여자가 끝내 목숨을 잃은 것은 다음날이었다. 진지했지만 길지는 않았던 초반의 대책회의에서 그녀는 자주 거론되었다. 어차피 그녀의 부상은 생명을 부지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므로 그녀에 대한 화제는 주로 이런 것이었다.
"부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식사를 좀 더 하는 게 좋을 거에요."
"네, 부상을 회복하려면요."
"아, 부상을 회복하자면요."
그렇게 말하는 모두는 그녀의 부상이 회복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장이 보일정도로 심한 상처를 단단히 동여매고 구조를 기다리던 그녀도 조금씩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요구에 짓눌려갔다. 처음에는 그런 느낌을 받을 때 마다 오히려 더 악착같이 음식을 먹고 물을 마셨으나 조금씩, 조금씩, 음식을 남겨서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는 일이 늘어났다. 결국 음식을 먹는 일을 포기한 그녀를 다른 사람들은 따뜻하게 보살펴주었다. 여자가 눈을 뜨지 못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모두들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녀는 눈을 뜨고 일어나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곧 죽을 그녀에게, 음식과 물을 나누어주고 따뜻하게 보살펴준 것에 대해서 아주 감사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가 죽은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사람들은 다섯 명분의 음식과 물을 꺼내어 조용히 나누어 먹었다.
식사의 와중에 한 남자가 해묵은 습관처럼 아무 내용도 아닌 말을 꺼냈다. 대화로 이어질 만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흔한 내용의 짧은 문장이었다. 다음과 같이.
"음식이 상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추운 곳이니까 당연하지요."
"추운 곳이라 다행인가, 그럼."
"다행일리가요. 이렇게 추운데."
"아, 그래. 밤에는 견디기 힘들어.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지."
"그럼 시체들이 더 빨리 상했겠지요. 저 냄새는 정말 역겨워."
"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시체가 빨리 상했겠지. 응. 그랬겠지."
"그럼요. 뭐라고 생각하나요."
"응, 그렇지. 그랬겠지."
두 사람은 해묵은 습관처럼 대화를 계속했다. 다른 사람들을 모조리 배재하듯이, 짧은 간격으로 이어지는 대화에 다른 목소리가 더해졌다. 다음과 같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요?"
"당연하죠! 말이라고 해요."
"응, 그래요. 그렇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요?"
"똑같은걸 몇 번을 묻는 거지요? 그렇다니까."
"...그렇게 생각해야지. 그렇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요?"
"정말 얘기하기 어려운 사람이네. 됐어요."
"...나는 추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해.'
"그러면 왜 그렇게 얘기하지 않나요?"
톡톡톡톡, 여자의 손가락은 초조함을 드러내듯 연신 바닥을 두드렸다. 그것을 배경으로, 남자의 말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다음과 같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나를 다치게 하니까. 그러니까."
"그래요. 그렇다면 그 말들은 당신의 안에 넣어두는게 좋겠군요."
그리고 모두들 밥을 먹었다. 조용한, 침묵을 입 안으로 밀어넣는 것 같은 묵직한 식사였다. 이전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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