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 2


다음날, 다른 사람들은 남자의 시체를 문 밖으로 내보냈다. 나이롱으로 만든 질긴 형광색 겉옷은 그의 무게만큼 단단하게 매듭지어져서 결국 남자가 목을 맸던 자리에 걸어둘 수밖에 없었다. 남은 사람들은 여섯 사람 분량의 식사와 물을 꺼내서 묵묵히 먹고 마셨다. 더 이상 밖으로 나가보자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밖에는 시체들이 있었던 것이다. 살아있는 제 목숨을 연민하기 위해서는 바깥에 패대기쳐진 죽음들을 외면해야 했다. 살아남아있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저 많은 목숨을 이고지고 살아야 하는 날들은 참으로 두려운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살아있는 자신이, 죽어있는 그들보다 더욱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도무지 저 혼자 살아있는 자신을 감당할 수가 없으므로.

음식과 물은 신중하게 최소의 분량으로 나누어졌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큰 사고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구조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발견하리라는 계산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주 장기간 그 안에 있을 것을 생각해서 음식과 물은 필요한 만큼만 아주 조금씩 먹어야만 했다. 음식과 물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둥글게 둘러앉은 한가운데에 두었다.

마치 고깔 모양의 과자를 열 손가락에 하나씩 끼워놓고 순서대로 빼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누군가는 생각했다. 몹시 어울리지 않는 비유였지만. 누군가가 빼앗아먹지 못하도록 자기 손가락에 욕심껏 과자를 끼우고 그것을 등 뒤로 숨기는 것과 같은 배식이었다. 음식의 종류와 분량을 계산하여 모든 것들을 조금씩 나누어두는 것은 어린아이들이 손가락이 열 개밖에 없다는 것을 잊고서 한줌 가득 과자를 챙기는 것 같은 무의미한 탐욕이었다.

처음의 며칠간은 하루 온종일 그 음식 무더기를 보다가 문득 잠들고 또 일어나서 그것들을 바라보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무엇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은 배도 고프지 않았다. 해가 저물어 갈 무렵 누군가가 식사를 제안한다. 그러면 약속된 분량만큼의 음식을 모두 조용히 나누어 먹는다. 어두워지면 자는 듯 마는 듯,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어둠 속을 응시한다. 지대가 높아서인지 유난히 따가운 아침햇살이 잠을 깨우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묵묵히 음식을 먹는다. 그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집에 있는 꿈을 꿨어."

그러므로 누군가가 잠꼬대처럼 입을 열었던 밤은 모두에게 꿈처럼 기억되었다. 여자의 졸린 듯한 나직한 목소리는 다른사람들이 잠을 재촉하듯 높낮이 없이, 끊어짐도 없이 계속 이어졌다. 꿈 속의 꿈 인듯 이야기 속의 풍경이 어두운 눈꺼풀 속에 파리하게 불을 밝히고 다음의 말을 재촉한다.

"집에 있는 꿈. 왜 엄마랑 동생들 있고, 강아지도 있고. 현관에는 아직 물이 촉촉한 화분도 있고. 그 화분이 내가 키우는 화분인데 다른 사람이 키우던 나무에서 꺾꽂이 받은 거야. 근데 그게 화분에 꽂아놨더니 쭉쭉 자랐어. 물을 많이 줘도 안 되고, 그냥 마를 때 마다 조금씩 줘야 하는 화분인데. 흙을 적시는 느낌으로. 그거 내가 키우는 거라서 다른 사람들은 손도 못대게 했었어, 그 화분이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어. 근데 꿈에 그 화분이 나왔어. 파릇파릇하게. 나는 그 화분에 물을 주고 있고 엄마가 휴일에도 화분만 끼고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 만날 생각도 안한다고 막 화내고. 동생들은 그냥 자기들끼리 놀다가 막 웃고. 그리고 나는 화분에 물을 또 주고. 그런 꿈을 꿨어."

이야기의 끝에 남은 여운에 하나의 파문을 던지듯이 다른 목소리가 물었다.

"왜 다른 사람들하고는 만나지 않아요?"

"그냥. 매일 사람들을 만나는데 노는 날도 만나야 하는건 피곤하니까."

"사람들을 만나는 건 노는게 아닌가요?"

"사람들을 만나려면 화장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 옷도 골라야 하고."

"그냥 편한 옷을 입고 만나면 안되나요?"

"아니... 그러면 그 사람들이 나를 허술하게 생각할테니까."

"왜 그렇게 생각해요?"

잠깐 숨을 고르는 듯한 나직한 한숨소리.

"화장도 치장도 하지 않은 나는 아주, 평범하니까. 그러면 아무도 나와 만나주지 않겠지."

"그래요. 그렇다면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주 힘들겠군요."

그것으로 대화는 그치고 내용보다는 운율로 그 대화를 감상하던 사람들은 다시 무엇도 없는 막막한 어둠 속에 내던져졌다. 꿈 속의 꿈은 끝나고 다시 온통 어둠으로만 이루어진 꿈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타인의 손끝 하나도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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